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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농부 박만수 소장 삶의 쉼표
20년 농부 박만수 소장 삶의 쉼표
  • 이순용 기자
  • 승인 2019.11.0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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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내 몫과 내 몫이 아닌 것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리 내가 원하거나 가지고 싶은 것이라도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이 내 일이며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만이 내 것인 뿐이다. 내 몫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고 내 몫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삶은 아름답고 평화로워진다고 한다. 원하는 것을 계속 원하기만 한다면 내 삶은 불행해지고 만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생존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도시인

박만수(64. 예밀와인연구소 소장. 에밀2리영농조합법인 이사)소장의 첫인상은 너무도 조용하고 깔끔해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첫인상과는 달리 진솔함이 더해져 갔다.

박 소장이 예밀2리로 귀촌한 것은 2000년. 원래는 부인이 산을 좋아해 삼척 도계쪽으로 가려고 했다가 우연히 예밀리를 지나면서 한눈에 마을에 반해 무작정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의 모습에 반해서 왔지만 모든 귀촌인들이 그렇듯 농촌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요 서울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깨달은 것이 농촌 사람들을 스승으로 처음부터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2년을 준비하여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장인어른의 반대가 심했다. 반대를 설득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온 가족의 중국여행이었다. 박 소장 가족은 당시 6개월 동안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조용히 예밀리로 돌아왔다. 중국여행은 가족들에게 많은 감동과 소통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산골마을 생활은 힘은 들었지만 나름대로 적응을 잘해 나갔으나 문제는 자녀들의 교육이었다. 박 소장은 아이들에게 결정을 맡겨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과 중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은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무난하게 대학까지 진학하였다. 당시 박 소장이 무난하게 농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부인과 자녀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되었다.

박 소장은 자신이 지식인이라는 것을 자부했지만 막상 농사를 하려는데 자신은 농업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생존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던 것이다.

‘농민들을 스승으로 배우자’는 각오로 처음 농사를 지었던 것이 하우스 5동에 실험농을 시작한 것이었다. 농업은 사람들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기에 자신이 실험농을 통해 나중에 책을 쓰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농업은 어렵기만 했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벽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귀촌 40년이 된 사람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귀촌인은 영원한 마을의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마을 원주민들의 고정 관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와이너리와 와인공부

에밀2리는 포도마을이다. 마을에 와이너리가 생겨나 와인 생산을 하면서 박 소장은 와인연구소 일을 맡았다. 자신은 와인 공부도 열심히 했다. 처음 직함은 마을 영농조합의 대표였으나 와이너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대표자리는 마을 사람에게 물려주고 연구소장을 맡았다.

많은 사람들이 박 소장에게 질문하는 것은 경제활동에 관한 것이다. 박 소장은 서울에 있을 때도 저술활동과 출판사 경영, 특히 번역을 많이 하였다. 거기에 자신이 선교단체에 오랫동안 종사해 오랜 시간에 걸쳐 성경번역과 번역을 뒷받침할 성경 사전 작업도 병행하여 현재 출판 단계에 들어가 있다.

“농촌은 유유자적하며 삶의 열을 식히는 곳입니다. 도시에서 했던 작업들도 이곳에서 하면 더 능률이 오르는 거예요. 요즘처럼 통신 수단이 발달한 덕분이지요”라고 말하는 박 소장은 귀촌은 농촌을 떠났던 사람들이 회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 땅을 지켜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발효에 높은 관심, 앞으로 농촌의 숙제

박 소장은 농촌이 바로 자기 삶에 맞는 쉼을 만들기에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경험을 말한다. 바로 시간이 멈출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는 것이다. 삶에 정신적인 쉼표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박 소장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부인과 함께 자유롭게 여러 곳을 다니고 싶고, 목공도 하고 싶고 자신의 성경 번역과 사전작업을 일반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기 위해 부인이 학예사 자격을 획득하기도 했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 발효식품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 농촌이 부가 가치를 높이고 소득을 늘릴 수 있는 요소는 바로 발효입니다. 1차 농산물 보다 발효를 거치면 높은 가격에 농산물을 팔 수 있으며 그것만이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지금도 발효에 관한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농촌생활 20년 세월은 박만수를 산골 농부로 변신시켰다. 변신이라기 보다는 보람있고 자신에게 꼭맞는 제2의 인생의 장을 열어준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솔하고 의미있는 박만수 소장의 앞으로 삶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그 대답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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