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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돌이마을 귀촌 일기 / 굴러온 돌 일년
삼돌이마을 귀촌 일기 / 굴러온 돌 일년
  • 두메산골
  • 승인 2019.12.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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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귀향, 그리고 삼돌이마을

황병석(64) · 이옥녀(63) 부부

 

사람들은 왜 자연이라면 무조건 열광하는 것인가. 그것은 자연이 바로 인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어서 영원히 잠드는 곳.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한다. 귀농, 귀촌도 마찬가지다.

귀농, 귀촌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교훈은 과거와의 이별이다. 지나온 삶이 편안했든 죽을 만큼 힘들었든 간에 과거에서 벗어나야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열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레임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다. 과거를 잘못 돌아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만 상처를 입는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현재에 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황병석, 이옥녀 부부는 귀촌이 아니라 귀향을 한 사람들이다. 너무나 어려웠던 30년 전. 서울로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서울로 갔고 그곳에서 30년을 살았다.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도 그냥 두고 갔다. 정확히 30년 만에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은 많이 변해 있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 세월동안 자신들의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려 앉아 있었지만 변했어도 고향은 고향이었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던 동네에는 근사한 집들이 들어서 있고, 거기에 낯설지만 인심 좋은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황 씨 부부는 18개월 전에 결혼식을 올렸던 그 집으로 돌아왔다.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마치 며칠 도시 나들이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 황 씨 보다는 부인 이옥녀 씨가 더 그런 느낌이었다.

장날 장에 갈려면 옥수수자루를 이고 메고 30리 길을 걸어서 다녀와야 했던 운학리가 아니었다. 운학이라는 마을 이름보다 삼돌이마을이라는 애칭이 더 가깝게 들려왔다. 부모님들이 물려주신 1천여 평의 농토에 고추, 참깨, 들깨를 심으며 실로 30년 만에 일년 농사를 지었다. 그것은 수확에 관계없이 부부에게는 진한 감동이었다.

아직도 부부는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이 정말로 잘한 선택이었으며 자신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귀촌인들처럼 편안한 삶을 위해 돌아왔지만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경험이 부부의 생각을 조금은 바꿔놓기도 했다. 돌아와서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마을의 공동체 의식이었다. 그 옛날 자신들이 젊었던 시절 살았던 마을의 인심과 전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또 삼돌이마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마을과 달리 마을 공동체가 여기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드물 것 같아요. 정말 마을 사람들이 대단한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이장님의 헌신과 배려에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황 씨는 삼돌이마을에서 1년 반을 살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이곳에 와서 느꼈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고 그 안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또 공동체라는 사회를 형성하여 마을과 자신들을 위한 작은 이익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두에게 풍요와 편안함을 안겨주는 마을. 그곳이 바로 삼돌이마을이고 황병석 부부가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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