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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동강에 반해서 왔는데....” 박희식의 귀농 11년차 사연
“영월 동강에 반해서 왔는데....” 박희식의 귀농 11년차 사연
  • 두메산골
  • 승인 2018.04.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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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았던 아내에게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

 

100세 시대, 2018년 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 그 인생의 황금기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참으로 어려운 화두(話頭)이다.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사람들에게 90세가 넘도록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18%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우리 주변 사람들 가운데에도 90세가 넘은 이들의 삶을 본 사람들은 오래 살고는 싶지만 그 삶을 받쳐줄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귀농, 귀촌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시골이 좋아서, 아니면 도시생활에서의 부담감 등으로 말하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밝히기 힘든 사연들이 자리하고 있다. 커다란 기대감과 많은 계획을 갖고 온 귀농, 귀촌 생활은 유토피아가 아님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귀농 11년차 박희식(朴喜植 · 73)씨. 충남 당진이 고향인 박씨는 서울에서 알아주는 건설회사에서 핵심적인 일을 했다. 그는 15년 전부터 귀농, 귀촌을 결심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장소를 물색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강원도 홍천의 홍천강가였다. 그러나 그곳은 인연이 없었던지 중간에 부동산 소개소의 실수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서 방영되는 영월 동강의 풍광을 보고 “바로 저기다”라는 생각이 들어 영월군 한반도면 후탄리로 귀농을 하게 되었다.

농촌생활은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신은 55세에 팔씨름 선수로 전국을 제패했던 적도 있을 만큼 건강하고 건설회사에서 평생을 다져온 패기가 있었음에도 농사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노동이었다. 그리고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마을 원주민들과의 소통과 어울림의 단절이었다. 이제는 편안하게 지낼 나이에 6천여 평의 땅에 짓는 농사도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였다. 그렇게 부부가 땅을 일군 세월이 11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 동안 6천여 평의 농사는 이제는 뒤를 돌아다 볼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농사 박사는 안되도 석사정도는 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농사는 자신들이 먹을 것은 자급자족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아로니아와 작년에 토종다래를 심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큰 수입은 아니지만 현상유지를 하면서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마음을 열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인내하고 소통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월에서 11년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땀과 집념의 세월이었다. 몇 번인가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옛말에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귀농,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제일 먼저 참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노동이 아닌 운동 의미의 농사를 지을 것을 권하고 싶다.

이제 내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다. 생각을 많이 정리하고 내려놓았다. 나이들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람 있는 노년기 인생이 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마음으로 살고싶다.

아무 일도 없이 노년기를 보내는 사람은 불행하다. 남들이 사는대로 나도 지내면 된다는 생각은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내가 남은 인생을 사는 신념이다. 욕심을 버리고 새털처럼 가벼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끝으로 많은 고생을 시킨 아내에게 미안함을 사랑으로 덮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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