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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의 1982년
법흥사의 1982년
  • 이순용
  • 승인 2018.01.20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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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기억속의 사자산 법흥사

 

1982년 초 여름이었다. 예기치 못한 일로 잠시 서울을 비워야 할 때가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무작정 차에 올라 이른곳이 주천이라는 곳이었다.

주천을 풀이하면 술샘이라는 뜻이 되는 동네 이름에서 부터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법흥사가 제일 유명하단다. 나는 법흥사로 가기로 했다.

주천 읍내에서 걸어서 가는 길은 초 여름인데도 덥기만 했다.

동네를 벗어나 조금 가니 아담한 오층탑이 하나 나왔다. 탑 주변의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웠던 곳으로 기억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탑은 그 옛날 법흥사를 찾는 스님과

신도들을 위한 안내탑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이정표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이른 곳이 바로 사자산 법흥사였다. 지금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절이 잘 가꾸어져

제법 큰 절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대웅전과 다쓰러져가는 요사채 한채가 절의 전부였다.

대웅전 앞에는 당시 주지 스님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서있었다.

내용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시 절 주변을 뒤덮고 있던 오래된 소나무에 관한 내용이었던 같다.

대웅전과 요사채 사이의 소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가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는 건물은 없었고 진신사리를 모신 잔디가 뒤덮힌

분묘같은 것이 있었다. 지난 해 다시 법흥사를  찾았을 때 절의 변한 모습에 작은 감동이 일었지만

36년 전의 법흥사가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법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아홉개의 봉우리를

설명해주시던 젊은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오는 길에 올랐던 요선정에서 더위를 식혔던 일,

요선정에서 내려다 본 주천강의 탁한 물빛과 법흥천의 맑은 물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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